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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진정한 애국자

by 솟쇠 2024. 2. 15.

한국의 위인 중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인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동안 뛰어난 리더십과 담대함으로 대단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역사의 굴곡 사이에서 그의 삶은 후대에 큰 교훈으로 다가옵니다. 

 

 

출처 - 흉상 : 이순신 장군(전쟁기념관(촬영기관:전쟁기념관,한국문화정보원,2019)), www.kogl.or.kr(공공누리)

 

 

1. 미남자의 독립적 성품

이순신(1545~1598)은 서울(현) 서울시 중구 인현동 근처)에서 이희신, 이요신 두 형과 동생 이우신 등 4형제의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관직에 뜻이 없었던 부친으로 인해 가세가 많이 기운 상황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너무 사랑했으며 가정교육에 엄격했습니다. 그는 문학적 소양이 뛰어나서 시가에 능했으며, 정의감 있고 용맹스럽고 어진 성품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후에 투철한 정의감으로 인해 적을 만들고 모략당해서 계급이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한편, 전쟁에서의 용감함으로 인해 부하들의 용기를 일으켜서 전장에서 승리를 하는데 일조했습니다. 인자함으로 인해 노모를 극진히 모시고, 부모를 일찍 잃은 조카들을 친아들같이 보살필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남에게 구속받기 싫어했으며 화살을 만들어 전쟁놀이를 즐겼습니다. 성장하면서 말을 타고 활쏘기를 즐겼으며 글씨에도 빼어난 소질이 있었습니다. 28세에 무관 시험에 응시하던 중 말에서 떨어져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4년 후 1576년에 병과에 급제하게 됩니다. 무관의 길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 계급이 내려가는 불운을 겪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47세의 나이에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됩니다. 왜구의 침략을 대비해 좌수영(지금의 여수)을 본거지로 하여 전쟁을 위한 배를 만들고 군 관련 시설과 장비를 준비했고 마침내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2. 임진왜란(1592~1598)에서의 대활약

 

당시 조선은 문신 중심의 나라였습니다. 상대적으로 국방에 소홀하여 역대 가장 쇠약한 상태였습니다. 반면 일본의 군사력은 막강했습니다. 100년 이상의 혼란한 시대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평정이 되었습니다. 오랜 전쟁으로 잘 훈련된 정예군 수십 만이 있었습니다. 포르투갈에서 조총까지 들여온 상황이었습니다. 일본은 조선을 거쳐 중국까지 진출할 계획을 구상했습니다. 마침내 적은 부산을 시작으로 침략을 이어갔지만 조선에는 도망가는 장수에 오합지졸들 뿐이었습니다. 왕인 선조는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개성으로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자신들을 버리고 떠났다고 생각한 백성들은 분노하여 관청을 습격하여 노비문서, 토지대장 등이 불타는 등 대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일본은 수륙병진작전으로 조선의 전역을 장악하고 군의 고립을 막기 위해 전라도를 약탈하여 물길을 통해 물자를 운반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전라도에는 해군 대장 전라 좌수사 이순신이 있었습니다. 옥포해전(1592년 5월) 승리를 시작으로 한산도 대첩(1592년 7월 8일, 판옥선으로 대승), 명량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일본 함선 300척과 조선 판옥선 12척과의 싸움에서 명량의 좁은 해협과 빠른 조류 변화를 이용해서 적을 무찔렀습니다. 후에 그는 노량해전에서 적의 총탄을 맞고 전사했습니다.(1598년 11월 19일)

 

 

3. 나라를 위해 희생한 애국자이자 혁신가

 

당대의 정치적 혼란과 개인적 역경과 어려운 고비 속에서도 이순신의 국난 극복 의지와 실행력은 적군까지도 그 이름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떨게 만들었습니다. 가장 견디기 힘든 폭력인 전쟁에 맞서 수많은 고민과 노력으로 가장 앞장서서 전장의 파고를 헤쳐나갔습니다.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진정한 성웅이었습니다. 요즘같이 국가정체성이 모호해지고 흐릿해지는 상황에서 장군의 희생과 나라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은 역사에 길이 남아 후대에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이는 또한 국경을 초월하여 인간의 국가에 대한 소속감과 희생에 대해 곱씹어 볼 수 있는 뒷맛을 남깁니다. 장군의 유산은 군사적 준비와 수행 능력을 넘어 혁신적인 사고로 이어집니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해전 전술로 혁명을 일으키고 선체 위 전체를 둘러싼 판을 둘러 씌워 만든 거북선을 만들어서 적의 공격에도 큰 손실 없이 자유자재로 적에 접근할 수 있었고 대포를 쏘아서 조총 위주의 왜군에게 무소불위의 공격력을 가했습니다. 급변하는 디지털전환, 인공지능전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순신의 유연함과 혁신은 본받고 실천해야 할 표준입니다. 그의 역사는 수용과 실천, 비판적 사고를 통한 끊임없는 변화와 함께 안정을 찾아가는 하나의 여정을 보여줍니다. 적재적소에서의 적극적이고 자발적 사고와 빠른 실행력을 통해 긍정적인 결과의 연속을 만들어 갔습니다.